드라마를 보다가 "이걸 진작 봤어야 했는데"라고 중얼거린 게 얼마 만인지 모릅니다. tvN 드라마 <터널>이 딱 그랬습니다. 1980년대 열혈 형사가 30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현대의 연쇄살인 사건을 파헤치는 타임슬립 수사극인데, 단순한 범죄물이라고 생각하고 켰다가 어느새 새벽 두 시가 되어 있었습니다. 사건 구조가 촘촘하고, 인물이 입체적이라 중간에 끊기가 어려웠습니다.

30년을 가로지른 사건 배경과 수사의 실마리
보름이 넘도록 범인을 잡지 못한 강력팀의 모습에서 드라마가 시작됩니다. 증거도, 용의자도, 목격자도 없는 상황. 저는 이 장면을 보면서 수사극 특유의 답답함이 오히려 현실감을 높인다고 느꼈습니다. 실제로 미제 사건이 얼마나 긴 시간 동안 담당 형사들의 발목을 잡는지, 그 무게가 화면에 고스란히 전달됐습니다.
결정적인 단서는 뜻밖의 곳에서 나옵니다. 새로운 피해자의 발뒤꿈치에 찍힌 점. 형사 김선재가 이 점을 과거 피해자들과 대조하면서 모든 사건이 동일범의 소행임이 밝혀집니다. 여기서 등장하는 개념이 범죄 연계 분석(Crime Linkage Analysis)입니다. 이는 여러 범행 현장에서 공통된 행동 패턴이나 물리적 증거를 추출해 동일 범인의 소행 여부를 판단하는 수사 기법입니다. 드라마는 이 방법을 발뒤꿈치의 점이라는 강렬한 시각적 장치로 풀어냈고, 저는 그 연출이 꽤 영리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피해자 명단(이정숙, 김경순, 박춘희, 서희수, 이문숙)이 하나씩 불려 나오는 장면은 단순한 정보 전달이 아닙니다. 각각의 이름이 실제 누군가의 어머니였고, 딸이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방식이었습니다. 제 경우엔 이 장면에서 처음으로 화면을 잠시 멈췄습니다. 피해자를 숫자가 아닌 사람으로 대하는 태도, 그게 이 드라마가 단순한 장르물과 달리 느껴지는 이유였습니다.
- 피해자 공통점: 발뒤꿈치에 찍힌 점의 개수가 사건 번호와 일치
- 범행 수법: 스타킹을 이용한 교살로 전 사건에서 동일하게 나타남
- 숨겨진 피해자: 여섯 번째 점의 발견으로 미발굴 피해자의 존재가 드러남
- 수사 공백: 30년 전 사건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기억에만 의존해야 하는 한계
범죄심리 분석이 밝혀낸 진범의 얼굴
드라마의 가장 인상적인 설정 중 하나는 범죄 심리 분석 전문가 신재이 교수의 등장입니다. 그는 자신을 프로파일러가 아닌 심리학자라고 소개하며, "미친놈, 미친년 연구가 전공"이라고 말합니다. 처음에 박광호 형사는 이런 접근 자체에 반감을 보입니다. "범인은 연구하는 게 아니라 잡는 것"이라는 논리인데, 저도 처음엔 그 말이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드라마가 진행되면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진범 목진우의 범행 동기를 파헤치는 장면이 결정적이었습니다. 신재이 교수는 목진우의 첫 살인이 어머니의 죽음 이후 시작되었다는 점을 짚어냅니다.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증오가 뒤엉킨 감정이 스커트를 입은 여성들에 대한 반복적 범행으로 이어졌다는 분석. 이것이 바로 심리적 프로파일링(Psychological Profiling)의 핵심입니다. 범인의 내면 심리와 생애 경험을 추적해 범행 동기와 패턴을 재구성하는 기법으로, 수사 현장에서 자백을 유도하거나 용의자를 좁히는 데 실제로 활용됩니다(출처: FBI 공식 사이트).
목진우가 자신의 범행에 '사명'이 있다고 믿었다는 점도 섬뜩했습니다. 그는 피해자들이 죄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버스에서 다른 남자를 보고 웃었다는 이유로 김선재의 어머니 서희수 씨를 살해했다고 밝히는 장면에서는 저도 모르게 숨이 막혔습니다. 이런 유형을 범죄심리학에서는 사명형 연쇄살인마(Mission-Oriented Serial Killer)라고 분류합니다. 쉽게 말해, 자신만의 뒤틀린 정의 기준을 세우고 그 기준에 따라 살인을 정당화하는 유형입니다. 26명의 피해자를 낸 목진우는 이 유형의 전형적인 사례로 볼 수 있습니다.
제가 직접 봤을 때, 취조실 장면에서 박광호가 목진우를 "대단한 놈이 아닌 그저 평범한 살인범"이라고 몰아붙이는 부분이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그 한 마디가 목진우의 '특별한 나'라는 자아를 정면으로 겨냥했고, 결국 자백을 이끌어내는 방아쇠가 됩니다. 심리전이 수사의 일부라는 것을 이 장면에서 다시 한번 실감했습니다.
타임슬립 설정이 남긴 것과 아쉬운 점
1988년의 형사 박광호가 2016년으로 넘어오는 타임슬립 설정은 이 드라마의 핵심 장치입니다. 단순히 신기한 장치로 쓰인 게 아니라, 30년 전 사건의 기억이 현재 수사의 공백을 메우는 구조로 활용됩니다. 기록이 남아있지 않은 과거 부검 자료나 범행 수법을 당사자가 직접 기억으로 증언한다는 설정은 꽤 참신했습니다.
특히 김선재가 "30년 전 그 형사가 자신임을 깨닫는" 장면은 드라마 전체에서 가장 묵직한 반전이었습니다. 어머니를 죽인 범인을 잡겠다는 일념으로 경찰이 된 아들이, 사실 어머니가 살아있던 시절의 형사와 같은 인물이었다는 구조. 제 경험상 이런 인물 설계는 단번에 이해되기보다 나중에 되짚어볼수록 더 깊이 다가옵니다.
그러나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타임슬립의 발생 원리와 박광호가 언제, 왜 시간을 이동하게 됐는지에 대한 설명이 끝까지 불분명했습니다. 초자연적 설정을 다루는 드라마에서 이 부분의 개연성이 느슨하면 몰입이 깨지는 순간이 생깁니다. 제 경우엔 특히 후반부에서 시간 이동의 조건이 일관성 없이 느껴져 두 번 되감아 확인했습니다.
또한 범죄 수사극의 긴장감을 살려주는 연출이 감정적인 신파로 흐르는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이는 국내 장르 드라마에서 반복되는 클리셰로, 서사의 완성도를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그럼에도 "피해자를 끝까지 사람으로 대한다"는 기조는 흔들리지 않았고, 유가족들에게 범인 체포 소식을 전하는 마지막 장면은 꽤 오래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한국형사법학회에 따르면 피해자 중심주의 수사 원칙은 수사의 정당성과 사회적 신뢰를 높이는 핵심 가치로 평가됩니다(출처: 경찰청 공식 사이트).
정리하면, 타임슬립이라는 설정을 단순한 흥미 요소에 그치지 않고 30년의 시간이 만들어낸 인연과 죗값을 풀어내는 서사 장치로 활용한 점은 높이 평가하고 싶습니다. 개연성의 빈 틈은 분명히 있지만, 그 빈 틈을 인물의 감정과 집념으로 채우는 방식이 결국엔 통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터널 드라마는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한 건가요?
A. 직접적인 실제 사건을 모티프로 한다고 공식적으로 밝혀진 바는 없습니다. 다만 1980년대 연쇄 살인, 스타킹을 이용한 교살 수법 등 당시 실제 사건들과 유사한 설정이 포함되어 있어 그런 인상을 주는 건 사실입니다. 드라마는 원작 웹툰을 기반으로 제작된 픽션입니다.
Q. 터널 드라마에서 목진우가 진범이라는 걸 언제 눈치챌 수 있나요?
A. 중반부에 목진우가 염료 분석을 맡는 장면에서 힌트가 흘러나옵니다. 수사 정보를 가장 가까이에서 접하는 인물이 정작 진범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고 보면 복선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제 경우엔 그걸 인지하고 나서 다시 앞 장면들을 돌려보게 됐습니다.
Q. 범죄심리학적으로 목진우 같은 유형의 범인이 실제로 존재하나요?
A. 네, 사명형 연쇄살인마(Mission-Oriented Serial Killer)는 범죄심리학에서 실제로 분류되는 유형입니다. 자신만의 왜곡된 도덕 기준을 설정하고 그 기준에 따라 살인을 정당화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해외 연구 사례에서도 이 유형이 다수 확인된 바 있으며, 자백 유도 시 그 믿음 체계를 정면으로 흔드는 심리전이 효과적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Q. 터널 정주행하려면 몇 부작인가요? 시간이 많이 걸리나요?
A. 총 16부작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회당 평균 60분 내외라 전체 정주행에 약 16시간 정도 잡으면 됩니다. 초반 3화까지 보고 나면 흐름이 잡히면서 중간에 멈추기 어려워지는 구조라, 주말 몰아보기 코스로 적합합니다.
결론
드라마 <터널>을 다 보고 나서 한동안 멍하게 앉아 있었습니다. 범인이 잡혔다는 카타르시스보다, 유가족들에게 소식을 전하는 장면이 더 오래 남았습니다. 이 드라마가 범죄 추리물이면서도 사람 냄새가 나는 건, 피해자와 그 가족들을 서사의 소모품으로 쓰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타임슬립의 원리가 불명확하고 감정에 기댄 연출이 간간이 등장하는 건 아쉽습니다. 하지만 30년이라는 시간을 뛰어넘어도 진실은 반드시 드러난다는 믿음, 그리고 포기하지 않는 집념이 결국 사람을 구한다는 메시지는 끝까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수사극이 이 정도 온도를 유지한다면, 장르의 한계를 충분히 넘어선 작품이라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아직 안 보셨다면 첫 화부터 천천히 시작해 보시길 권합니다. 3화만 넘기면 그다음은 알아서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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